제법 자신 있게, 예배 전 피아노 연주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학교 앞 피아노 학원에서 멋진 선생님을 만나 1년 정도 배운 덕분입니다. 제일 많이 혼났던 것은 소리의 힘이었습니다. 전달되지 않게 소리가 나면, 매번 원장 선생님은 주의를 주었습니다. 이제는 한 음을 눌러도 경쾌하면서도 깊이 있게 누르도록 신경을 씁니다. 왼손의 반주보다는, 오른손의 멜로디가 더 전달되도록! 잊지 않습니다. 마지막 연습곡은 바흐 였습니다. 마무리는 특히 어려웠는데, 언제나 대충이 없는 원장님은 몇 번이고 반복시킵니다. 그렇게 마지막 문을 나서서, 지하철을 타러갈 때... 문득 가슴이 벅찼습니다. "그래도!" 이만큼까지 와서 좋았습니다. 바이엘을 (탄탄하게) 많이 배울 수 있어서 기뻤고, (낮은음 자리표 까지) 악보를 드디어 읽어나갈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바라던 일을 생각만 해본 것과, 시간을 맞춰가며, 1년 넘게 도전해 본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읽고 있는 책에 의하면, (책은 저의 오랜 취미 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든다. 이것을 "관찰" 이라고 했습니다. 원장님은 관찰력이 대단히 밝은 사람이었습니다. 제 눈에는 아직 이게 안 될꺼라고 포기한 지점에서도, 때때로, 고집스럽게 밀어붙여 갑니다. "왜요?", "저는 생각이 달라요!", "것참! 놀라지 좀 마세요!" 약 10개월쯤 지나고, 악보 없이 몇 곡을 연주할 수 있게 되었고, 원장님이 결국 옳았습니다. 피아노 장님이던 저는, 이렇게 피아노를 많이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글을 길지 않게 마무리 지으려 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곳저곳 몸과 마음 건강에 문제가 생기고, 가게 일을 멈추게 되고, 덕분에, 피아노에 기대었던 추억이 인생의 선물 같아서 기쁩니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을 들으면서, 저녁 시간을 위로 받을지 예전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니까요. 제 낡은 성경책에는 좋은 가족을 그럼에도 주셔서 주님께 감사하다고 적혀 있...
생각을 돌이키기. 저에게는 어려웠습니다. 특히 "아직 할 수 있어!" 마음 먹기가 큰 도전이었죠. 마침 이번 주에는 약 1년을 정식으로 배웠던 피아노까지 그만두었습니다. 자신의 정신적 미숙함은 오래도록 - "다른 사람에 대한 미안함"이 되어 남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미안함이 컸고, 그것은 또한 괴로움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한편 시간은 무섭도록 흘러가는 게 이제 선명히 보입니다. 공부방 시절의 아이들은 어느덧 훌륭한 사회인이었고, 예쁜 신부가 됩니다. 저는 이미 인생을 헛되게 보낸 지가 한참입니다. (아픈 기간도 많이 길었습니다.) 저는 꽤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요?" 신은 이번에도 침묵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3번에 걸쳐서 이렇게 답이 옵니다. (의심 많은 저를 위한 배려이거나, 좋게 바라보면 인생을 포기하지 않는 섭리겠죠.) 1. 효율이라는 것, 쓸모라는 것. 다 제쳐두고 젊은 날에 배움이 있다는 건 귀중한 거야. 2. 아직 공부 열심히 하고 있지? (이 질문은 9월 19일 바로 오늘 들은 이야기 입니다.) 3. 세상에는 심층적 학습자가 있다. 이게 왜 맞는 걸까? 끝까지 탐구하는 학생이다. 인생을 다른 태도로 배워봐. 출제자의 의도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A+가 나올지, 혹은 어떻게 관심을 끌지, 성공 전략을 세울지, 전.부. 무.시. 하고. 너에게 주어진 "선한 사명" 을 제대로 마주 하는 거야. 그게 공부가 아닐까? 나아가 "인생을 산다"가 아닐까? 이른바 메타인지 관점에서는 (학습 곡선을 분석했을 때) 빠른 배움도 있지만, 오히려 느리게 시작되어 깊이 있게 전개되는 배움도 있다고 합니다. 한 번만 더 도전해 보려고 합니다. 지금의 어설픈 걸음으로는 그래도 공부 여행을 천천히 떠날 수 있지만, 시간이 더 흘러서는 네모난 첨단 바보 상자 감옥에 인식이 갇힌 채, 곧 죽음 앞에 설 테니까요. "아!!!" 깊이 있게 하나라도 ...